(KOR) 시공간 국소성 측면에서 장 실재성의 필요성
2022년 봄학기 포항공과대학교 시공간과 물질의 철학 수업 과제로 작성한 글입니다.
장이론이란 공간이 물리적 속성을 가지고 상호작용을 매개한다는 이론으로, 원격 작용의 비국소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입되었다. 장이론은 많은 물리 현상에 대한 직관적인 설명을 제공하기 때문에 현대의 많은 물리학자들은 장이 실재한다고 믿으며 장 개념을 기반으로 물리 이론을 확립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시공간 국소성과 장이론이 가지는 의의가 무엇인지 다루고, 장이 실재한다는 주장과 그 비판에 대해 논의한다. 장이 실재한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을 고려하더라도, 국소성 측면에서 장이론이 가져다주는 의의와 국소성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장이 실재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장이론이 도입된 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공간 국소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시공간 국소성을 엄밀하게 정의하기 전에 그 직관적 의미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도움이 되는데, 이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지는 두 사건이 시공간 상에서 인접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즉 사건이 시간 혹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다른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이다. 시공간 국소성에 따르면 시간 혹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두 사건이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은 두 사건이 시공간상에서 인접해 있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지는 사건들의 연속으로 매개되어 있기 때문이지, 시간 혹은 공간을 건너 뛰는 방식으로 인과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시공간 국소성이 직관적으로 자연스러운 개념임을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예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벽에 있는 스위치를 눌렀더니 천장의 전등이 켜졌다고 하자. 이 때 스위치를 누른 사건이 아무런 매개 없이 천장에 마법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끼쳐 전등이 켜졌다고 생각하는 대신, 스위치에서 출발한 ― 아마도 전기적 신호일 ― 무언가가 벽에서 천장까지 연속적으로 전달되어 전등이 켜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공간적 국소성에 기반한 사고이다. 다른 예로 어제 상한 음식을 먹어서 오늘 배가 아픈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어제의 식사가 마법적인 방식으로 오늘의 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이해하는 대신, 어제 먹은 음식에 있던 ― 아마도 식중독균일 ― 무언가가 어제부터 오늘에 걸쳐서 위장에서 점진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 시간적 국소성에 기반한 이해이다. 위 예시에서 전등 스위치나 식중독균의 정확한 작동 기작을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직관에 기반하여 위와 비슷한 추론이 가능하리라 기대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기대는 국소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시공간 국소성에 대한 설명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에 큰 문제가 없으나, 논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 시공간 국소성의 엄밀한 정의는, 한 사건이 있을 때 임의의 시간 간격 \(\tau > 0\)와 공간 간격 \(\delta > 0\)에 대해 사건과의 시간 간격이 \(\tau\) 미만이고 공간 간격이 \(\delta\) 미만인 시공간상의 영역에서 사건에 대한 완전한 원인 집합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완전한 원인 집합이란 결론으로 이어지는 인과관계의 연속적인 흐름을 모두 포함하는 사건들의 집합을 말한다. 예를 들어 물체가 \(A\)에서 \(B\)로 \(1m/s\)의 속도로 이동한다고 할 때, 물체가 \(B\)에서 \(1m\) 떨어진 곳에서부터 \(B\)까지 \(1\)초에 걸쳐 연속적으로 이동하는 모든 사건들의 집합은 물체가 \(B\)에 도착한다는 결론에 대한 완전한 원인 집합이 된다. 여기서 \(1m\), \(1\)초라는 조건 대신 충분히 좁은 시간과 공간 간격을 택하더라도 그 시공간 영역 안에 물체가 연속적으로 이동해 \(B\)에 도달하는 과정을 완전하게 담을 수 있는데, 이것이 이 사건이 시공간 국소성을 만족함을 나타낸다.
이렇게 복잡한 정의가 필요한 이유는 시공간이 조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직관적인 의미에서 시공간상에서 인접한, 직접적 인과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시공간 구조의 특징상 이러한 속성은 두 시공간 점 사이의 관계로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다. 앞선 예시에서 물체가 \(B\)에 도착한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사건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그것이 물체가 \(B\)에서 \(\epsilon\) 만큼 떨어져 있는 사건이라면, 물체가 \(B\)에서 \(\epsilon/2\) 만큼 떨어져 있는, 그보다 더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사건을 항상 찾을 수 있다. 이는 시공간이 조밀한 구조를 가지기 때문인데, 이 성질을 염두에 두면 시공간의 두 점 사이의 관계로 인과관계의 직접성을 정의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러한 문제를 피하고자 한 사건의 직접적 원인을 시공간상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대신, 사건의 연속적인 집합으로 바라보고 국소성을 정의했다.
위 정의 아래 시공간 국소성은 일상 생활과 과학을 포함한 인간의 삶에 대단히 중요하고 필수적인 개념으로 보인다. 시공간 국소성이 가지는 중요한 함의 중 하나는 그것이 사건의 분석을 용이하게 한다는 것이다. 국소성을 전제한 상황에서 어떤 결과를 관측했을 때 그 결과에 대응되는 원인 사건의 집합을 찾고 싶다면, 시공간상에서 결과를 포함하는 임의의 작은 영역을 택하고 그 영역 내부만을 분석하면 된다. 그리고 영역 내부에서 찾은 원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싶다면, 찾은 원인을 결과로 다시 좁은 영역을 정하고 그 영역 내부에서 원인의 원인을 찾으면 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이렇게 시공간 국소성은 현상을 어떻게 분석하는지에 대한 강하고 효과적인 지침을 제시한다.
반대로 국소성이 성립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국소성을 가정하지 않는다면 결과를 유발한 원인이 어디에 있을지에 대한 일반적인 보장이 없고, 인과관계의 분석을 위해서는 무한히 넓은 영역을 탐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과관계의 분석이 불가능한 환경 하에서는 고차원적인 과학 논의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도 큰 지장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국소성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대단히 중요한 직관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국소성이 만족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물리 현상을 몇 가지 알고 있다. 중력이나 전기력과 같은 먼 거리에서 작용하는 힘이 그것이다. 널리 알려진 뉴턴의 중력 법칙 \(F = G\dfrac{m_1 m_2}{r^2}\)이 질량을 가진 두 물체가 얼마의 힘을 받을지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으며 힘의 전달에 있어 어떠한 시간적 지연이나 매개체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 있음을 상기하자. 뉴턴의 중력 법칙에 따르면 질량을 가진 두 물체는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서로에게 인력을 행사한다. 즉 뉴턴의 이론 아래 중력은 원격 작용이다. 이 경우 태양이 지구를 끌어당기는 힘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 시간 간격이 없으므로 인과관계가 시간에 대해 국소적이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원인으로부터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므로 공간적 국소성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뉴턴의 고전적인 이론에서 벗어나 특수상대성이론을 가정하면 상황이 조금 달라지지만 여전히 국소성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어떠한 정보도 빛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없기 때문에 중력과 전기력을 통한 상호 작용 또한 반드시 빛의 속력을 상한으로 하는 시간 지연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태양의 질량 분포가 순간적으로 변화한다면 지구에서 중력을 감지함으로써 그 변화를 인식하는데는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인 8분 이상이 걸릴 것이다. 즉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공간적 국소성 뿐만 아니라 시간적 국소성도 만족하지 않게 된다. 다만 이러한 시간 지연을 보면 중력의 작용이 태양에서 지구까지 순차적으로 시공간 국소성을 만족하며 유한한 속력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이는 분명 유의미한 추측이긴 하지만 특수상대성이론 자체는 중력이 시간적 국소성을 만족할 수 없음을 의미할 뿐, 중력이 어떠한 방식으로 전파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특수상대성이론이 국소성 위배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장이론은 이렇게 국소성을 만족하지 않는 원격 작용을 국소적 상호작용의 연속으로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장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상의 각 점은 물리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접한 점에 그 물리적 속성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파된다. 그리고 이렇게 전파된 물리적 속성은 다시 그 공간에 있는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장을 통해 작용하는 물리 현상은 인접한 점 간에 인접한 시간 내에 전파되는 국소적 상호작용의 연속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국소성을 위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장 이론 하에 전하를 가진 입자 \(A\)가 \(B\)를 잡아당기는 현상은 더 이상 두 입자 간의 원격적이고 직접적인 상호 작용이 아니며, 입자 \(A\)가 자신을 중심으로 전기적 속성을 가진 장을 형성하고, 그 장이 빛의 속력으로 공간에서 전파되며, 전파된 장이 입자 \(B\)가 위치한 공간에 도달하면 입자 \(B\)에게 힘이 가해지는 국소적 상호작용의 연속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장이론이 원격 작용의 비국소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결론을 맺기 위해서는 장이 실재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만약 장이 계산의 편의를 위해 도입한 물리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개념이라면 전기력이 장을 따라 국소성을 만족하며 작용한다는 주장은 계산의 편의를 위해 전기력이 국소성을 만족하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흔히 물리학 교과서에서는 전기장을 매우 작은 전하를 가진1 가상의 실험 입자가 받는 전기력을 그 전하의 크기로 나눈 값으로 정의하곤 하는데, 이러한 정의가 전기장을 계산의 편의를 위해 도입한 것에 해당된다. 보조적인 의미에서 전기장의 도입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것이 물리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면 물리적 상호작용에 참여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국소성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장이 실재한다는 주장에 대한 몇 가지 가능한 비판을 살펴보고 평가하고자 한다. 장이 실재한다는 주장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장을 직접적으로 관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이 자연에 실재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공간상에 상호작용할 수 없는 입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공간이 그 자체로 물리적 속성을 점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공간상의 입자가 받는 힘만을 측정할 수 있을 뿐 공간의 속성을 직접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장이 실재한다는 주장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개념을 도입한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직접적인 관측의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장의 비실재성에 대한 유의미한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위 논증은 물질은 직접적인 관측이 가능하지만 장은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관측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여기서 직접적인 관측은 대단히 임의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각 기관이 가져다주는 직관적인 정보 전달에 대단히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감각 기관으로부터 전해지는 정보가 직접적인 관측이라는 특별한 지위에 있다고 착각하기 쉬우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물체를 직접 관측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은 물체로부터 반사된 빛을 통해 간접적으로 관측한 것에 불과하다. 즉 시각의 익숙함에 그 사실을 놓치고 있을 뿐, 물질의 관측 역시 장의 관측과 마찬가지로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 아래 장을 직접 관측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장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이 특정 감각 기관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자연의 속성을 판단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장이 실재한다는 주장에 대한 보다 유의미한 비판은 정지한 점전하가 자신이 위치한 곳에 전기장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쿨롱의 법칙으로부터 얻은 점전하의 전기장 공식 (\(E = \dfrac{1}{4 \pi \epsilon_0} \dfrac{q}{r^2}\))은 전하가 존재하는 원점(\(r=0\))에서의 전기장의 크기를 정의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장이 실재한다면 원점에서도 장이 잘 정의되어야만 한다. 전기장을 계산을 위해 도입한 보조적인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편의상 특정 위치에서 장을 정의하지 않더라도 문제되지 않지만, 만약 전기장이 공간에 실재하는 전기적 속성이라면, 점전하가 자리잡은 위치가 공간적으로 장이 정의되지 않을 특별한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전하가 위치한 원점에서 전기장은 어떤 값을 가지더라도 자연스럽지 않아 보인다. 먼저 원점에서 전기장의 크기가 0이 아니라면 전기장은 원점에서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데, 점전하는 구형 대칭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기장이 어떤 방향을 가지더라도 자연스럽지 않다. 하지만 원점에서 전기장의 크기가 0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지 않은데, 그렇게 가정한다면 전기장의 세기가 원점에 가까워질수록 무한히 증가하다 원점에서 불연속적으로 값이 0이 됨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점전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식으로는 이 문제를 완전히 회피할 수 없다. 점전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자를 0이 아닌 전하밀도를 가지는 부피 요소들의 합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경우 전하를 가진 부피 요소들이 어떻게 내부적인 척력을 극복하고 하나의 입자로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의문이 제기된다. 나아가 입자가 있는 곳에서 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문제는 일반적으로 입자가 자신이 만드는 장과 상호작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논의로 확장될 수 있는데, 점전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만으로는 확장된 논의에 유의미한 답을 내 놓을 수 없다.
위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장 일원론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장 일원론이란 장이 물질보다 근본적인 개념이라는 견해로, 자연에 물질이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물질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장이 가지는 입자적 속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장 일원론에 따르면 입자가 존재함으로써 장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고 장이 입자적 속성을 가지는 특이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점전하가 있는 위치에서 전기장이 특이점을 가지는 이유는 단지 장이 입자적 속성을 가지는 특이점을 가지며 우리가 그 특이점을 관측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입자가 자신이 만드는 장과 상호작용하지 않는 이유 또한 입자가 장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입자가 곧 장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다만 이러한 설명을 위해서는 장이 왜 특정한 영역에서 입자적 속성을 가지는 특이점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장이론은 입자가 장을 방출하는 현상과 입자가 장에 반응하는 정도가 같은 이유를 자연스럽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장이 실재한다고 가정하고 질량을 가진 두 입자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현상을 살펴보자. 장이론 아래 중력은 질량을 가진 입자가 중력장을 발산하고, 시공간을 따라 전파된 중력장이 질량을 가진 다른 입자를 만나 국소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으로 해석된다. 이 경우 두 입자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은 두 입자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사유 아니라, 각 입자가 상대 입자가 발산한 중력장과 상호작용하는 별개의 두 사건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두 입자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인력의 크기가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
뉴턴역학에서 두 입자의 상호작용의 크기가 같음은 직관적으로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다.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은 두 물체 사이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이며, 근접 작용이 아니긴 하지만 작용-반작용 법칙이 적용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용-반작용 법칙에 따르면 물체 \(A\)가 물체 \(B\)에 힘을 가하면, 물체 \(B\)는 물체 \(A\)에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힘을 가하는데, 이러한 가정 아래에서 두 입자 간의 인력의 크기가 서로 같음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다. 즉 뉴턴역학 하에서 중력은 비록 국소성에 위배되지만, 두 물체가 서로에게 작용하는 힘의 크기가 같음이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하지만 장이 실재한다고 가정하면 상호작용의 크기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장이론 하에서 입자가 장에 반응하는 현상과 입자가 장을 방출하는 현상은 별개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직관에서 두 별개의 현상이 반드시 같은 크기의 상호작용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근거를 찾기는 어렵기 때문에 장이 실재한다고 믿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물리 법칙을 가정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입자가 장을 방출하는 세기와 장에 반응하는 정도가 같은 물리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두 입자가 같은 힘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장을 계산의 편의를 위해 도입한 값처럼 해석한 결과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쿨롱의 법칙(\(F=\dfrac{1}{4 \pi \epsilon_0} \dfrac{q_1 q_2}{r^2}\))을 가정하고 전기장을 계산을 위한 도구로써 실험 입자가 받는 힘을 물리량으로 나눈 값으로 정의한다면, 전기장 공식은 쿨롱의 법칙을 입자가 방출하는 전기장의 세기를 계산하는 공식 (\(E = \dfrac{1}{4 \pi \epsilon_0} \dfrac{q_1}{r^2}\))과 전기장이 있는 공간에서 입자가 받는 힘을 계산하는 공식(\(F = q_2 E\))으로 분리해서 얻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쿨롱의 법칙을 가정하지 않는다면 왜 두 공식이 모두 전하량이라는 같은 물리량에 비례하는 형태로 표현되는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
입자가 방출하는 장의 세기가 입자의 어떤 물리량에 비례할 것이라는 기대와 입자가 장에 반응하는 정도가 입자의 또다른 물리량에 비례할 것이라는 기대 각각은 합리적이지만, 두 물리량이 같은 것이라는 직관은 비유하자면 야구 선수의 투수로서의 실력과 타자로서의 실력이 같을 것이라는 직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전기장이 실재한다면 그것에 대한 자연의 법칙은 야구 선수의 실력에 대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칭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두 상호작용이 같은 물리량에 비례해야 할 직접적인 직관이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장의 실재성이 국소성 측면에서 우리의 이해에 가져다 주는 이익을 고려할 때 위의 근거는 장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에는 불충분해 보인다. 앞서 언급한 비판에서 제기된 의문은 당장 해결되지 않더라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국소성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포기해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장이 실재한다고 가정하면 장이 왜 특정한 점에서만 입자적 속성을 가지는지, 왜 입자가 방출하는 장의 세기와 입자가 장에 반응하는 정도가 같은 물리량에 비례하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러한 의문들의 핵심은 장이론이 자연에 대한 충분히 근본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는 적은 가정만으로도 자연의 작동 원리를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 뿐, 그 자체로 심각한 개념적 결함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성이론을 설명할 때 등가성원리를 통해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같다는 가정을 도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소 비직관적으로 보이더라도 가정을 추가로 도입하면 현상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다. 추후에 이러한 가정들이 보다 근본적인 원리를 통해 통합적으로 설명되리라 기대할 순 있겠지만, 당장 그러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해서 장의 실재성에 근본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반면 장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실질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장이란 근본적으로 원격 작용을 국소적으로 매개하는 개념이므로 장의 실재성을 부정하면서 국소성에 대한 직관을 유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국소성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직관이다. 국소성에 대한 직관을 포기하면 인과관계에 대한 분석이 불가능해지며, 국소성에 기반해 쌓아 올린 수많은 과학 이론을 대체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장의 실재성을 가정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는 이러한 실질적인 문제에 비해 사소한 문제로 보인다.
시공간 국소성은 우리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직관으로, 인과관계의 분석을 위한 강한 지침을 제공한다. 장이 실재한다고 가정하면 국소성에 대한 직관을 수정하지 않고도 원격 작용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장의 실재성에 대한 여러 비판적 견해를 고려하더라도, 시공간 국소성이 가지는 의의를 생각할 때 장이 실재한다고 보는 것이 더 나은 견해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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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입자가 계의 다른 요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가정하기 위해 도입된 조건이다. ↩